많은 사람들이 풀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마침내 페렐만 박사가 이 문제를 풀고 상금 100만달러를 수상하게 됐지만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수학계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왜 이 천재 수학자는 상을 거부하고 좋아하는 직업까지 버렸을까요? 이 100년 묵은 추측에 관한 저주와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이 추측은 바로 푸앵카레 추측입니다.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다
러시아의 두 번째로 큰 도시 세인트 피터즈버그에 사라진 그리고리 펠렐만이 은둔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스텍로브 수학연구소가 최근까지 그의 직장이었습니다. 페렐만의 전 직장동료가 그의 사무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를 잘 알던 동료들도 그의 은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페렐만에게 수학은 전부였습니다. 페렐만의 고교시절 스승이었던 알렉산더 아브라모브는 그의 은둔에 누구보다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몰래카메라에 잡힌 그의 모습은 처량해 보였고 편의점에서 사려던 작은 생필품하나가 가격이 비싸단 이유로 구입을 포기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페렐만은 뛰어난 수학천재였습니다. 천재는 일반사람들과는 다른세계에 살지만 이상했습니다. 그의 은둔은 아직도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고 분명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페렐만이 증명한 푸앵카레 추측은 지난 백 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힌 무척이나 난해한 문제로 많은 수학자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합니다. 지금껏 문제를 풀기는 커녕 진전도 거의 없었습니다. 페렐만의 성과와 은둔생활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선 선구자들의 전철을 되짚어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푸앵카레 추측이란?
푸앵카레 추측은 1904년 파리에서 생겼습니다. 앙리 푸앵카레는 수학, 물리학, 철학 등 여러분야의 석학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아이작 뉴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습니다. 지난세기동안 수학자들이 씨름을 해왔던 푸앵카레 추측은 그리고리 페렐만 덕분에 이제는 증명된 이론이 되었습니다. 푸앵카레에 의하면 모든 3차원 물체는 3차원 구면과 위상동형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소리일까요???
푸앵카레가 다녀 그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로 찾아가 봤습니다. 2007년 6월 이곳에선 특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강사는 오르세 파리 대학 수학자인 발랑탱 포에나루씨로 밧줄 한 가닥으로 푸앵카레 추측을 설명하였습니다.
“우주로의 기나긴 여행을 상상해 보세요. 이 빨간 밧줄로 대신해 보죠. 우주의 모양이 이 밧줄대로 여행행로가 모두 남김없이 회수될 수 있게 생겼을까요?”
푸앵카레 추측은 우주의 모양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럼 우주의 모양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 걸까요?일단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 해도 우주를 외부에서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푸앵카레의 어려운 논리를 쉽게 접근할 방법은 있습니다.
푸앵카레의 생각
로켓 끝에 아주 긴 밧줄을 매달고 우주로 발사 시킵니다. 밧줄을 매단 로켓은 우주 전체를 누비고 다닐 것 입니다. 그렇게 긴 밧줄은 가상의 밧줄이라 생각합시다.
일단 로켓이 우주 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제 양손에 고리모양이 만들어진 밧줄의 양끝을 잡고 있다 상상하죠. 이제 양손으로 세게 잡아 당기면 밧줄을 모두 회수할 수 있습니다.
요점은 줄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주의 형체가 나오지 않을까요? 물론 불가능하지만 우주를 외부에서 관찰한다고 가정해 보죠. 던진 밧줄이 매번 회수가 가능하다면 우주가 기본적으로 둥글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푸앵카레 추측은 우주의 모양을 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만일 밧줄이 어딘가에 걸려 모두 회수할 수 없다면?그럼 우주에 거대한 구멍이 나있거나 해서 밧줄이 구명 주변에 고리처럼 걸린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주의 형체가 도넛모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푸앵카레는 내부에서 우주의 형체를 입증하려했고 수많은 수학자들이 이를 증명하려 했지만 이것을 증명하는데는 100년이 걸렸습니다.
푸앵카레 추측에대한 입증
여기서 구형이니 도넛모양이니 고리를 회수한다는말.. 이게 대체 수학과 무슨관계가 있을까요? 대체적으로 수학이라 하면 x,y가 등장해야 수학이라 할 수 있겠죠. 일반 수학과 푸앵카레 추측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보는것이 필요합니다. 20세기 초의 기학학적 관점에서 본 세계는 X,Y,미적분학으로 이루어진 미분기하학의 세계였습니다. 미분기하학의 기초인 미적분학의 창시에는 아이작 뉴튼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세한 수학 공식으로 형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엄격한’수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년 후 20세기 사고의 거장인 푸앵카레가 등장했습니다. 푸앵카레는 알려지지 않은 우주의 모양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형태의 이해를 목적으로 한 수학인 위상기하학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푸앵카레의 논문과 노트에는 전통수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림과 공식이 가득합니다. 푸앵카레 추측은 이런 혁신적인 수학을 필요로 했죠.
위상기하학이란?
위상기하학에서는 도넛과 커피잔이 같은 모양입니다. 어려운 공식을 피하고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푸앵카레 추측은 위상기하학의 분야이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쓰여 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미분 기하학에 따르면 모두 다른 모양이지만 위상기하학은 보다 융통성 있게 형태를 봅니다. 예를 들어 접시, 스푼 주전자 뚜껑은 모두 구형으로 커피잔은 도넛모양으로 찻주전자는 구멍이 두 개 있는 도넛처럼 변형될 수 있습니다. 푸앵카레는 구멍의 개수에 따라 물체를 분류하는 포괄적인 관점을 채택했죠.
수학자들의 생각
이제 지난 세기동안 수학자들을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갔던 푸앵카레 추측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푸앵카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뉴튼과 어깨를 나란히 못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푸앵카레는 자신의 추측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는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수수께끼같은 경고를 남겼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위한 수많은 노력들은 뜻밖의 발전들이 있었습니다. 1950년대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첫 번째 돌파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위상기하학자인 볼프강 하켄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것이 매운 쉬울 것이라 생각했고 전 생애를 이에 바치게 됩니다. 하켄의 최대 라이벌은 크리스토스 파파키리야코푸로스였습니다. 이 둘은 서로 먼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파파는 푸앵카레 추측에 완전 매료되어 8시 아침 식사후 8시 30분부터 연구하여 간단한 점심과 저녁을 제외하곤 모든 시간을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유일한 사교활동은 오후 3시 연구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파티에 참석하는 일도 없이 평생 모든 시간을 연구에 바쳤습니다. 파파와 하켄은 앞에서 말한 우주여행 로프를 회수하는데 있어 발생하는 문제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로프가 엉킨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를 해결한다면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파파가 동료에게 중대한 발견을 했다 말한적이 있습니다 “푸앵카레 추측을 결과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논문을 쓸 수 있는 대단한 진전이 있었다 하더군요” 그러나 곧 그의 이론에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고 발견되자 충격을 받은 파파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했습니다. 파파는 정신적으로 불안했습니다. 의사가 기분전환으로 영화를 추천했지만 푸앵카레 추측에만 사로잡힌 파파는 쉴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는지 알았죠. 옛날 그리스에서 만난 가족이야기도 하고 여자친구 얘기를 하기도 했고… 푸앵카레 추측만 증명하면 여자친구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우선 일을 해야한다고 말했죠”
그러던 중 하켄이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이 뜻밖의 소식에 파파는 완전히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3일 후 하켄의 이론을 검증하다 심각한 결점이 발견되었지만 이미 파파의 정신세계는 혼란에 빠진 후였습니다. 이 둘의 경쟁은 파파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남으로써 끝을 맺게 됩니다. 근의 집에서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많은 미발표 연구가 발견됐지만 핵심부분은 다 공백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권하지 않겠지만 자신에게는 맞는 삶이라 했죠. 수학 연구자들은 일반인들이 사는 희노애락의 일상사와 그들만이 아는 특별한 세계를 오가는데 거긴 불변의 진리와 기하학적 완벽이 존재하는 곳이죠.” 파파의 죽음 후에도 하켄은 계속해 연구하였습니다. 하켄은 가족의 배려덕에 감정적 수렁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걸 ‘푸앵카래병‘이라 불렀죠.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가족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저도 더 집착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농담도 하고 그만두라고도 했기에 별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리 페렐만의 푸앵카레 추측 증명
수학자들이 여전히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하던 시절 미래의 천재 수학자가 소련에서 탄생했습니다. 1966년 탕생한 그리고리 페렐만의 애칭은 그리샤였습니다. 수학교사였던 어머니는 그에게 특수조기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샤는 영재들을 위한 물리학과 수학으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재학했습니다. 그리샤의 천재성은 이곳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많은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했으며 16살에는 최연소 소련 참가자로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아직도 학교에는 그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 아브라모브는 그리샤의 올림피아드 선생님이였습니다.
“재능 있는 많은 참가닺들 중에도 그리샤는 매우 뛰어나다 했습니다 .놀라운 속도로 문제를 풀었으며 해답또한 명쾌했습니다. 이 훌륭한 해답을 보십시오 군더더기 없이 신속하게 결론에 이르죠 단 몇줄 만에 간단하고도 훌륭한 해답을 찾아냈어요“
아브라모브는 밝은 성격이었던 그리샤를 생생히 기억하고있습니다.
“문제를 풀 때 그리샤의 몸짓이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손을 허벅지에 올리고 앞뒤로 문지르곤 했습니다. 못 푸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어요. 우린 어려운 문제를 살인문제라고 부르는데 그런 문제가 많이 있었어요.”
페렐만에게는 올림피아드의 최고난이도 문제조차 쉬웠습니다. 이시기부터 그는 아무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보고자 야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페렐만의 고교동창인 알렌산더 고바노프는 그리샤는 푸앵카레 추측은 커녕 위상기하학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리샤의 천재성에 대해 얘기 해 주었습니다. “그리샤의 재능은 천부적이죠. 특히 물리학에서 뛰어났는데.. 말하자면…정말 환상적인 두뇌를 지녔었죠.물리학 올리피아드는 참가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수학 선생님이 반대했죠. 참가했더라면 거기서도 우승했을거에요.” 그리샤의 물리학적 재능인 이후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푸앵카레 추측 증명
1960년대 중반까지 푸앵카레 추측을 입증할 증거는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수학계엔 푸앵카레가 창시한 위상기하학이 대유행했고 60년대의 이 같은 수학계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인해 미적분학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60년대 중후반 수학세계는 위상기하학이 단연코 가장 각광받는 분야였습니다” 당시 많은 필즈 메달 수장자도 위상기하학자들 이었습니다. 위상기하학 개념은 수학계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분야 및 직종에도 응용되고 있었습니다.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위상기하학으로 설명되기도 했습니다.
60년대 위상기하학의 화신인 스티븐 스매일은 모든일에 있어 파격적이었습니다. 뛰어난 천재였던 스매일은 이전 수학자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푸앵카레 추측에 의하면 3차원인 우주로 보낸 개념상의 고리를 항상 회수할 수 있다면 우주는 기본적으로 구형이라는 것입니다. 스매일은 이 문제를 새롭게 간접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만약 우주가 3차원이 아니고 4차원이나 5차원이라면? 4차원이나 5차원??? 3차우너 세계의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차원입니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바로 이런일을 하죠. 없는 세상을 머릿속에서 만들어 냅니다. 스매일은 “보다 다차원으로 확장하는건 그렇게 어려지만은 않아요. 말도 안돼 보일지는 몰라도 3차원의 수학은 5차원이나 10차원에서도 통용됩니다”라고 말합니다.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스매일의 접근방법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우선 6차원 이상부터 시작해서 점차 차원을 낮춰가다 3차원인 푸앵카레 추측을 입증한다는 것 이였습니다. 이렇게 하는것이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가장 큰 문제점은 가상로프의 얽힘에 관한 것이였습니다. 보다 많은 차원세계에서는 이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스매일의 생각은 롤러코스터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3차원세계에서 기차의 이동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땅위의 그림자를 보면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차원인 지면에서는 선로가 서로 엉키데 됩니다. 선로가 엉키지 않으려면 단순히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이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매일은 푸앵카레 추측의 3차원적 문제를 이상의 높은 차원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푸앵카레추측이 5차원 이상에서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스매일은 1966년 필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스매일의 이론에도 큰 허점이 있었습니다. 고차원에서 통용되는것을 3차원으로 번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매일은 푸앵카레 추측의 입증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면 그 이론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이산적 역학과 2차원적 구형이 더 신비하고 흥미로웠어요. 다음엔 더 새롭고 다른일을 해 보고 싶어요”
그의 포기로인해 푸앵카레 추측의 입증은 다시 막혀버린듯 보였습니다.
윌리엄 서스턴의 등장
이후 곧 ‘마법사’라는 별명을 가진 수학자 윌리엄 서스턴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었습니다. 서스턴은 지금껏 골칫거리였던 푸앵카레 추측을 풀기위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우주를 여행한 로프를 고리형태로 다시 회수할 수 있다면 우주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구형이라고 기억하시죠? 그러나 회수가 불가능하다면 우주가 도넛 모양이라는 것일 까요? 푸앵카레 추측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서스턴은 이 점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구형이 아니라면 어떤 모양일까요? 이것이 서스턴의 혁명적인 새로운 접근방법입니다. “위상기하학의 목표는 다양체를 이해하고 분류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어렵겠지만 해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주가 구형이 아니라면 어떤 모양일까요? 서스턴은 주변 세계에서 힌트를 얻어 ‘다양체 즉 위상기하학적 형태를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쥘 수 있는 형태의 분류는 쉬운 일이었고 푸앵카레도 사과같은 형태를 구형이라 불류한바 있습니다.
사물에 있는 구멍의 개수에 따라 분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주처럼 외부에서 볼수 없는 형태가 문제였습니다. 10여년의 연구끝에 서스턴은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982년의 그의 논문은 전면적으로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우주는 보이는 전반적인 모양에 상관없이 단지 8개의 서로 다른 타입의 요소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담한 주장이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입니다. 볼프강 하켄은 “서스턴은 매우 똑똑한 사람입니다. 아주 대단히 천재적이죠. 마치 마법사처럼.. 생각하지도 못할 환상적인 예시나 증거 같은 걸 제시하니까요”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은 만화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화경에 보이는 변화무쌍한 복잡한 이미지는 단지 거울과 구슬 같은 물체를 몇 개 병렬 배치해 놓았을 뿐입니다.
서스턴은 우주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많아야 8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서스턴은“한정된 사물로 무한한 대칭 패턴을 만들 수 있듯이 한정된 다양체 또한 무한한 대칭 패턴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수학자들은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 이론에서는 푸앵카레 추측도 한가지 사례일 뿐입니다. 서스턴의 주장대로 우주가 최대 8가지 요소로 구성되었고, 그중 한가지가 구형 이라면 나머지 일곱 개는 수학자들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일 것입니다. 다시 푸앵카레 추측의 로프에 대해 생각해 보죠. 구형이 아닌 부분이 하나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로프가 여기에 걸리게 되고 회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스턴의 기하화추측을 옳다고 가정했을 때 로프가 걸리지 않고 회수된다면 우주가 구형이라는 푸앵카페 추측 또한 옳다는 것이므로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이 푸앵카레 추측을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 그래서 수학자들은 우주의 전체적인 모양과는 상관없이 8개의 구성요소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스턴은 이것으로 푸앵카래의 추축을 설명하려했는데 기술적인 면에선 절반의 진전을 이루었죠.” 그러나 혁신적인 기하화 추측을 제시했던 서스턴 자신은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서스턴은 “많은 노력을 쏟은건 사실이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고 진전되는 것이 없으면 물러서는 것도 현명하죠.”
그리고리 페렐만의 등장
1990년대 수학자들이 한창 이 8개 요소에 몰두하던 당시 한 젊은 청년이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푸앵카레 추측 연구의 전환점이 되는 26살의 그리고리 페렐만이였습니다.
고향인 소련이 정치적으로 몰락했던 시기로 그동안 제한되었던 미국과 러시아 수학자들 간의 교류가 활발해진 때였습니다. 그의 전공은 위상기하학으로 인해 주류에서 밀려난 미분기하학으로 페렐만은 미국에서 이 분야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1994년 그는 미분기하학을 이용해 소위 ‘소울 추측’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NYU의 지도교수였던 제프 치거는 설명이 너무 축약적이라며 더 자세한 설명을 권유했지만 페렐만은 거부했습니다.
제프 치거는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어요.‘훌륭한 작품이네!! 훌륭해!! 하지만 음이 너무 많아.’ 그랬더니 모차르트가 대답하길 ‘음이 너무 많다고요? 어떤음을 빼야할지 정확히 말해줘!! 딱 필요한 만큼의 음만 있을뿐이야!’.. 그리샤와 얘기할 때 이 장면이 떠올랐어요 하하..” 사교적이던 페렐만은 미국에 온지 3년째부터 외부활동을 중단한 채 연구실에 틀어박혔습니다. 그 계기는 최근 리차드 해밀턴이 발표한 수학 논문 때문이였습니다.
해밀턴이 고안한 ‘리치흐름‘은 우주의 8개 요소를 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론이었는데 그의 마지막 논문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것이 페렐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해밀턴은 “페렐만이 찾아와 알렌산드로브 공간에서 ’리치흐름‘을 어떻게 작성하는지 물었어요. 저는 왜 그것을 묻는지 많이 놀랬습니다.” ’리치 흐름‘은 물리학적 공식의 하나로 페렐만도 학창시절에 관심이 있었고 남들이 못 푼 문제를 즐기던 그는 이제 서스턴 기하화와 푸앵카레 추측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떠나기 직전인 95년도에 그가 질문을 했는데 관점이 변한 것 같았습니다. 평소엔 관심 없던 문제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안 갖고는 해결 가능성에 따라 다르다더군요” 2002년 말 서스턴과 푸앵카레 추측의 입증이 인터넷에 발표되었다는 소식에 수학계가 들썩였습니다. 푸앵카레 추측을 입증했다는 조급한 주장은 빈번했기에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논문의 결말을 먼저 봤더니 ’이런 방식으로 서스턴과, 나아가 푸앵카레의 추측을 푼다‘기에 ’하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군요.‘라며 겸점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죠.” 그러나 수학자들이 아무리 검토해도 결점이 없었지만 논리가 매우 독창적이고 하도 축약되어 있어서 여전히 의혹은 남아 있었습니다.
이듬해 2003년 미국 수학계는 그 증명을 직접 설명해 달라고 저자를 프린스턴 대학으로 초빙했습니다. 대강당은 초만원이었고 직접 푸앵카레 추측을 풀고자 했던 위상기하학자들을 포함하여 저명한 수학자들도 참석하였습니다. 당시 발표한 젊은이는 여러 제들을 풀 사람으로 우러러보는 그리고리 페렐만이었습니다.
그리고리 페렐만의 입증
수학자들은 페렐만의 방법론에 가장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위상기하학적 해석과는 설명이 너무 상이했기 때문이죠. “페렐만은 푸앵카레가 아닌 다른얘기만 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사실은 수학자들이 페렐만을 이해하지 못한것 뿐이죠..하하”, “위상기하학에 의한 입증이 아니라는 것이 아이러니였죠.” 페렐만은 미분기하학뿐 아니라 물리학적 기술을 적용하여 우주를 ’가열‘하고 ’팽창‘시켜 최대 8개 요소로 구성되었음을 입증했고 물리학의 에너지, 온도, 엔트로피같은 용어를 썼습니다.
위상기하학에 익숙해 있던 수학자들은 망연자실했습니다. ”악몽같았죠.. 하하 정말 악몽이 현실로 다가온 것 같았어요“, ”푸앵카레 추측을 연구해온 수학자들은 많이 실망했습니다. 위상기하학이 아닌, 그들이 모르는 방법으로 증명했으니까요. 위상기하학자들의 반응은 이랬던것 같애요 ’와우 드디어 증명되었다니 대단한 일이긴 한데… 난 못할 테니 누군가 검증했으면 좋겠군 하하‘
“ 페렐만은 2002년과 2003년에 3편의 인터넷 논문을 발표합니다. 수학계가 이를 검증하는데는 3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우주가 최대 8개 요소로 구성됐다는 서스턴 기하화 추측이 입증됐고 우주로 간 밧줄을 이용해 우주가 구형이라고 주장한 푸앵카레의 100년 묵은 추측도 옳았음이 마침내 입증되었습니다. ”이런 세기적 발견은 설명할 수도 비교할 대상도 없죠. 성공적인 결과를 위해서는 연구에만 집중해야하는데 현실세계와의 갈등 때문에 매우 힘든 일이죠.두 세계를 양립한다는 것은 힘든일인데, 페렐만은 7년동안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거죠.“
2007년 7월 러시아 세인트 피터즈버그, 세기의 발견을 뒤로하고 페렐만은 종적을 감췄습니다. 그의 스승 아브라모브는 페렐만을 만나기 위해 세인트 피터즈버그로 왔습니다. 그가 알던 생기발랄했던 제자가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왜 페렐만은 사회에서 종적을 감춘것일까요? 그의 스승은 페렐만이 살던 아파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5시간을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샤? 나 지금 자네 집앞에 와있다네….편지랑 뭐 이것저것 줄것이 있어…..물론 이해하네…그래도 이렇게 은둔하면 안되지 않은가? 뭔가 다시 시작할 계획인거지? ……편지가 필요없다고? 자네 마음을 어지럽혔다면 미안하네…”
수학 역사상 최고의 난제중 하나를 입증한 지금 페렐만은 스승을 만나는것도 거절했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됐어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네요..수학계 최대의 난제를 풀었지만 이후 적응하기가 어려운것 같군요…그의 정신세계는 지금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시련을 극복하고 난제를 입증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를 치루는 거죠..”
마치는 글
푸앵카레 추측은 많은 수학자들의 삶에 큰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이 100년 묵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푸앵카레 추측을 밀레니엄 7대난제중 하나로 명명했습니다. 남은 6개 난제를 풀기 위한 경쟁은 계속 되고있습니다. 왜 수학자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과제에 계속 도전할까요? 어떤 느낌일까요? 신체적으로 즐거움을 느끼위한 육체적 활동에서 얻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요??
어느 수학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실제 생명의 위험은 없어도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외에 다른 어느 것에도 상관하지 않게 되죠. 자신만의 방법으로 수학에 몰두할 때 그때의 즐거움은 결코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저는 분명 수학이 전공도 아니고 한 분야에 빠져 깊은 연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일진그룹에 취업한 상태로 본인의 전공도 멀리 하고 전혀 새로운분야에 도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을 떠올려 보거나,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듯이 2~3시간 빨리 보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지금 배우고 있는 부분인 일반해와 특수해를 찾으라는 말씀을 상기해보면 어느정도 그 느낌을 알수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7대 난제를 해결했을때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겠지만요…필자는 수학이란 부분이 단순하게 우리가 배우는 어려운 공식을 외우고 적용하는 분야가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풀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또한 미분학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위상기하학을 배우고 있을텐데…고마운 일인지 안된일인지는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리만가설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리만가설을 주제로 쓰고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리만가설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에 포스팅 하기로 했습니다.
리만가설 또한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불규칙적으로 나열된 소수들이지만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은 푸앵카레 추측이상의 무엇인가를 담고있는 것 같았습니다. 리만가설을 연구하던 많은 수학자들이 스스로 포기하거나 멘탈붕괴의 상황을 맞이했기에 저 스스로 판단해 보자면 리만가설의 끝은 신의 영역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소수’들을 어떠한 법칙으로 변환했을 때 파이가 등장하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변환시켰을 땐 모든 수가 0점으로 수렴하기도 합니다. 이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자연현상을 인간의 힘으로 수학화 시킨다면 자연을 지배하게 되어 신의 경지에 이를 것을 걱정해 신이 이 영역에 가까워지는 자에게 멘탈붕괴를 선물로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주의 영역또한 신의 영역으로 페렐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고 멘붕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합니다. 푸앵카레 추측이 신이 살고있는 집을 알아내는 길이였다면 리만가설은 신이 누군지 알수 있는 열쇠를 쥐고있어 더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듯 생각됩니다.